7화. 초록은 안 줄었다
택풍대과(澤風大過) 구사 → 수풍정(水風井)
한 시 반 약속인데 한 시 십오 분에 와 있었다.
앉으라고 하기도 전에 창틀부터 들여다봤다. 지난주에 올라온 순에 잎이 두 장 생겼고, 색은 여전히 옅었다.
"이거 물 주지 마세요."
"······네."
"뿌리가 썩은 거예요. 잎이 이렇게 처지는 건 목말라서가 아니고요."
그러고는 앉았다. 손바닥만 한 탁상달력을 탁자에 올려놓고, 그 위에 볼펜을 얹었다. 색이 네 개 들어 있는 거였다.
쉰일곱, 여자였다.
물을 따르려는데 손사래를 쳤다.
"아유, 됐어요. 금방 갈 거예요. 세 시에 엄마 물리치료 데려가야 돼서."
그래도 따라서 앞에 놨다.
"뭘 물으러 오셨어요."
"제가 봐준다고 해야 되나요, 말아야 되나요."
"누구를요."
"둘째요. 딸이 둘째를 가졌어요. 3월이요."
묻지도 않았는데 나머지가 따라 나왔다.
딸은 서른하나고 첫애가 두 돌이다. 지금도 주 이틀씩 봐주는데, 실제로는 사흘이 되고 나흘이 될 때가 많다.
"애 아빠가 지방에 가 있어요. 주말부부요. 요즘 다 그러고 살잖아요."
친정어머니는 여든여섯이다. 작년 시월에 화장실에서 넘어진 뒤로 혼자 못 걷는다.
"월수금 물리치료요. 제가 모시고 가요. 그래도 저희 엄마는 붙잡으면 걸으시니까 나은 거예요. 옆집 할머니는 아예······ 아, 이 얘기가 아니지."
"가게는요."
"미용실이요. 스물여섯 해 됐어요. 지금은 화목토만 열어요."
"왜 사흘이요."
"작년에 엄마 그러시고 나서 월수금을 뺐어요. 어차피 젊은 사람들은 다 큰 데로 가요. 저희 같은 데는 파마랑 염색이지 뭐. 작년엔 앞집 미용실도 접었어요. 그 집은 딸이 하다가······ 아, 됐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남편은 4년 전에 퇴직하고 집에 있다고 했다.
"그 사람도 답답하죠 뭐. 애기는 잘 못 봐요. 무서워해요."
숫자는 이미 다 세어 온 사람이었다. 어린이집 대기가 열일곱 번이고, 시간제 돌봄은 시간당 얼마고, 산후도우미를 2주 부르면 얼마고.
"계산기를 두 번 두드려 봤는데요. 사람 쓰는 게 더 나올 때도 있어요. 근데 딸애가 그 돈이 어디 있겠어요."
"······."
"다들 이러고 살잖아요. 저만 힘든 것도 아니고요."
"숫자는 다 세어 오셨네요."
"네?"
"그럼 오늘은 뭘 정하러 오신 거예요."
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아직 한 모금도 안 마셨다.
"······."
"주 닷새를 봐주면 가게를 못 열어요. 토요일 하나 남기는 게 최선이고요."
"네."
"간판을 떼면요."
"네."
"제 이름이 어디 남아요?"
들어와서 처음으로 말이 느려졌다.
"가게 이름이 제 이름이에요. 아버지가 지어 주신 거 그대로 붙였어요."
"······."
"근데요, 아무도 그렇게 안 불러요. 원장님, 할머니, 누구 엄마, 사모님. 스물여섯 해 동안 그래요."
통을 열어 산가지를 쏟았다.
"어유, 이게 뭐예요."
"쉰 개예요. 세고 나누는 걸 여섯 번 합니다. 십오 분쯤 걸려요."
"십오 분이요? 그럼 저 좀 앉아 있어야겠네."
이미 앉아 있었다.
택풍대과(澤風大過)가 나왔다. 네 번째 자리가 움직였다.
"대과예요. 클 대에 지날 과."
"지나쳤다는 거예요? 제가 너무 했다는 거예요?"
"그런 얘기가 아니고요. 보통 때를 넘어섰다, 그 말입니다."
"위가 연못이고 아래가 나무예요."
"물 밑에 나무면 좋은 거 아니에요? 물을 주는 거잖아요."
"택멸목(澤滅木)이라고 돼 있어요. 연못이 나무를 덮었다는 겁니다. 잠겼다는 쪽이에요."
"······아."
괘 맨 앞에 동요(棟橈)라는 말이 붙어 있다. 들보가 휜다는 뜻이다.
"들보요? 대들보 그거요?"
"네. 지붕을 가로로 받치는 나무요."
"휘었대요?"
"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유유왕(利有攸往)이 붙어요. 가는 게 이롭다고요."
"휘었는데 가라고요?"
"네."
종이에 막대 여섯 개를 위아래로 쌓아 그렸다. 가운데 넷은 굵게, 맨 위와 맨 아래 둘은 가늘게.
"이게 대과입니다. 가운데가 무겁고 양 끝이 약해요."
한참 봤다.
"······저희 엄마랑 딸애네요."
"······."
"저는 가운데고요."
움직인 자리에는 동륭(棟隆), 길(吉)이라고 적혀 있다.
"동륭은 들보가 높아졌다, 받쳐졌다는 겁니다. 길하다고 돼 있고요."
"길한 건 누구예요?"
"······."
"집이겠죠. 들보는 아니고."
"글쎄요."
"뒤에 세 글자가 더 붙어요. 유타린(有它吝). 다른 것이 있으면 부끄럽다."
"거 봐요."
"뭐가요."
"애 보면서 가게 생각하면 부끄러운 거잖아요. 딴생각 하지 말라는 거잖아요."
"아뇨."
"아니 거기 그렇게 적혀 있다면서요."
"타(它)는 원래 뱀이라는 글자예요. 뜻밖의 것, 엉뚱한 것. 그런 뜻으로 씁니다."
"그게 그거죠 뭐."
"선생님이 거기 들어간다고는 안 적혀 있어요."
"······."
"선생님 가게는 뜻밖의 것이 아닙니다. 그건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이런 말은 잘 안 하는 편인데 이건 그랬다.
그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들어와서 처음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대신 이 괘가 허용하는 모양이 몇 개 있어요. 어느 게 제일 닮았는지만 보세요."
"이 달력, 지난달 장 뜯어도 됩니까."
"어유, 뜯으세요. 쓸 데도 없는데."
뜯어서 뒷면에 적었다. 적으면서 하나씩 읽어 줬다.
하나. 못 본다고 말한다. 딸이 알겠다고 한다. 그 뒤로 사진 오는 간격이 길어진다. 가게는 화목토 그대로다. — 말은 한 번인데 그 뒤가 길다.
둘. 봐준다고 한다. 3월부터 주 닷새가 된다. 가게는 토요일만 연다. 화요일 목요일에 오던 사람들이 다른 데를 찾는다. — 문을 닫은 게 아니라 사람이 먼저 안 온다.
셋. 요일을 정해서 반만 본다. 정해 놓은 요일에도 아픈 날이 생기고 급한 날이 생긴다. 전화는 늘 나한테 먼저 온다. — 줄인 건 요일이지 전화가 아니다.
넷. 아무 말도 안 한다. 딸이 알아서 방법을 찾는다. 가게도 그대로고 물리치료도 그대로다. 내년 이맘때 달력이 지금이랑 똑같다. —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종이를 오래 봤다. 보면서 볼펜을 딸깍딸깍 눌렀다.
"이 볼펜 초록이 안 줄었네요. 빨강은 엄마고 파랑은 애기고 검정은 예약이거든요. 초록은 제 건데 쓸 데가 없어요."
"······."
"둘이요."
"왜요."
"여기 토요일이 남아 있어서요."
"······."
"토요일에 오는 사람들이 저를 이름으로 불러요. 같이 학교 다닌 사람들이라. 다섯인가 여섯인가 그래요."
"······."
"딴 데선 아무도 안 불러요. 우리 엄마도 얘, 하고 부르지 이름으로는 안 불러요."
종이 귀퉁이에 초록으로 뭘 적었다. 짧았다. 두세 글자쯤 됐을 것이다.
"뭘 적으셨어요."
"아니에요."
종이를 접어서 달력 뒤에 끼웠다.
세 시가 지났다. 그는 일어서지 않았다.
"늦으셨는데요."
"십 분만요."
물을 한 잔 더 따라 줬다. 이번엔 다 마셨다.
오늘 나온 건 대과였다. 칸이 여섯인데 가운데 넷이 굵고 위아래 둘만 가는 그림이다.
그중에 움직인 건 아래에서 네 번째, 딱 한 칸이었다.
그 한 칸이 굵은 데서 가는 데로 바뀌면 그림이 통째로 달라진다. 위쪽이 연못에서 물로 바뀌고 아래쪽은 그대로 나무다. 물 아래 나무가 들어간 모양, 그게 정(井)이다. 우물 괘다.
앞 그림이 오늘이고 뒷 그림이 내일이라는 말은 아니다. 같은 일을 다른 자리에서 본 두 장이다. 대과는 들보 쪽에서 본 그림이고 정은 우물 쪽에서 본 그림이다.
우물 괘 맨 앞에 개읍불개정(改邑不改井)이라는 말이 있다. 마을은 옮겨도 우물은 옮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 뒤에 무상무득(无喪无得)이 붙는다. 잃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다고 한다.
나는 이 구절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적지 않겠다.
말하지 않았다.
십 분이 지났는데 그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나도 보지 않았다.
이 글은 점술 상담이 아니라, 괘를 렌즈 삼아 상황을 다시 보는 연습입니다. 등장인물과 사연은 모두 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