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이상 없음

📅 2026.09.13 👁 37회 🏷️ #p60퍼스널코드 #퍼스널코드 #소설 #웹소설 #주역 #육효 #인생상담 #고민상담 #점술 #무료사주 #무료운세 #산수몽 #화수미제
산수몽(山水蒙) 육사 → 화수미제(火水未濟)

4화. 이상 없음

산수몽(山水蒙) 육사 → 화수미제(火水未濟)

앉자마자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탁자에 올려놨다. 내가 보온병을 들기도 전이었다.

서른여섯, 여자였다.

"차는 없어요. 그냥 물입니다."

"아, 저는 이거 있어서요."

그래도 한 잔 따라 줬다. 그는 손도 안 댔다.

"뭐가 궁금해서 오셨어요."

"병원을 계속 다녀야 할까요, 그만둬야 할까요."

"그건 제가 답할 수 있는 게 아닌데요."

"······."

"그건 의사한테 물으셔야죠."

"의사한테 물어봤어요. 아홉 번이나…"

이야기는 이랬다.

3년 전 10월부터 명치 아래가 아프다. 하루 종일은 아니고 오후 서너 시쯤부터 시작해서 잘 때까지 간다. 처음엔 체한 줄 알았다고 했다.

동네 내과 네 곳, 한의원 두 곳, 대학병원 두 곳, 정신건강의학과도 한 번 갔다.

위내시경 세 번, 시티 두 번, 피는 셀 수 없이 뽑았다. 작년에 반차를 열한 번 썼다.

"간수치가 22였고요, 염증 수치는 0.3이었어요. 다 정상 범위예요."

숫자를 외우고 있었다. 말하는 동안 손이 자꾸 명치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일은 그대로 다닌다고 했다. 회의가 오후 네 시에 잡히면 전날부터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저녁 약속은 거의 안 잡아요. 그 시간이 제일 심해서요."

"드시는 건요?."

"밀가루 뺐고, 커피 끊었고, 매운 거 안 먹어요. 2년쯤 됐어요."

"효과가 있었어요?"

"······모르겠어요. 안 하면 불안하니까 하는 거예요."

"마지막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검사상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신경성으로 보입니다."

"그 말이 왜 싫으세요?"

"······싫다고는 안 했는데요."

"싫어 보여서요."

그가 물병 뚜껑을 돌렸다. 열지는 않았다.

"아프지 말라는 소리 같아서요."

"누가 그렇게 말했어요."

"······아무도 그렇게는 말 안 했어요."

아래 층에서 세탁기 도는 소리가 올라왔다.

"2월에 엄마가 그만 좀 다니라고 했어요. 걱정돼서 한 말인 건 아는데."

"그래서요."

"그 뒤로는 아프다는 말을 잘 안 해요."

"그럼 오늘은 뭐가 궁금해서 오셨어요."

한참 걸렸다.

"이름이 없으면요. 사람들이 그건 아픈 게 아니라고 생각하더라고요."

"······."

"저도 이제 좀 헷갈려요."

그러더니 나를 똑바로 봤다.

"선생님은 제가 아프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모르죠."

"······."

"아파 보이기는 합니다."

"그게 무슨 차이예요."

"제가 아는 건 지금 손이 계속 거기 올라간다는 거고요. 나머지는 모릅니다."

산가지를 꺼냈다. 쉰 개를 세고 나누고 덜어내는 걸 여섯 번 해야 한다.

그동안 그는 창밖을 봤다. 손은 그대로 명치에 있었다.

산수몽(山水蒙)이 나왔다. 네 번째 자리가 움직였다.

"몽괘예요. 이 괘는 이런 그림인데요. 위가 산이고 아래가 물입니다."

"몽이면 어리석다는 그 몽이요?"

"그렇게도 읽는데, 원래는 덮여 있다는 뜻이에요. 안개 낄 때 쓰는 글자입니다."

"뭐가 덮였는데요."

"산 밑에서 샘이 솟는 그림이거든요. 물은 이미 나오고 있어요. 근데 어디로 흘러갈지 길이 아직 안 났습니다."

그가 나를 봤다.

"물은 나오고 있다고요."

"네. 그건 이 괘에서 안 따집니다."

괘 첫머리에는 이런 말이 붙어 있다.
비아구동몽(匪我求童蒙), 동몽구아(童蒙求我).
내가 저쪽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저쪽이 나를 찾아온다.

"······저는 계속 찾아다녔는데요."

"네."

"그럼 다니지 말라는 거예요?"

"그건 아니고요. 병원 얘기가 아닙니다."

"그럼 무슨 얘긴데요."

"글쎄요. 저도 이건 좀 더 봐야겠는데요."

움직인 자리에는 두 글자만 적혀 있다.
곤몽(困蒙), 인(吝).
덮인 채로 갇혀 있다, 부끄럽다.

"부끄럽다고요?"

"인(吝)이라는 글자예요. 부끄럽다, 아깝다, 인색하다. 잘못했다는 말은 아니고요."

"왜 부끄러운데요."

"그건 안 적혀 있어요."

그는 아무 말도 안 했다.
한참이었다.

"······저 부끄러워요."

"어디가요."

"아픈 게요. 아프다고 말할 때마다요."

"이 괘에 자리가 여섯 개인데요. 그중에 밝은 자리가 둘입니다. 두 번째랑 맨 위."

"네 번째는요."

"양쪽이 다 비어 있어요. 두 번째에서도 멀고 맨 위에서도 멉니다. 여섯 중에 제일 멀어요."

"그게 무슨 뜻인데요."

"물어볼 데가 가까이 없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저 아홉 군데 갔는데요."

"멀리요."

"······."

"아홉 군데서 뭐라고 했어요."

"다 같은 말이요. 이상 없다고."

"그럼 아홉 번이 아니라 한 번이네요."

그가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물병을 탁자 가운데로 조금 밀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데요."

"그건 모릅니다. 몸이 어떻게 될지는 더더욱 모르고요. 대신 이 괘가 허용하는 모양이 몇 개 있어요. 어느 게 제일 닮았는지만 말씀해 주세요."

노트 뒷장을 찢어서 네 줄을 적었다.

하나. 언젠가 이름이 붙는다. 생각보다 긴 이름이고, 붙고 나서도 아픈 건 그대로다. 다만 반차 쓸 때 설명이 짧아진다.

둘. 이름은 안 붙는다. 대신 한 군데를 오래 다니게 된다. 매번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나아졌냐고 물으면 대답이 애매하다.

셋. 아프다는 말을 안 하게 된다. 아픈 건 그대로인데 말이 준다. 사람들이 좋아졌나 보다고 한다.

넷. 아무것도 안 바뀐다. 내년 이맘때도 오후 세 시쯤부터고, 검사는 정상이고, 아무한테도 말 안 한다.

그가 종이를 오래 봤다.

"둘이요."

"왜요."

"매번 처음부터 설명하는 게 제일 힘들어서요."

"아픈 것보다요?"

"아픈 건 제가 아는 거잖아요. 설명은 매번 남이 모르는 거고요."

나는 그 말을 노트에 적었다.

"넷 중에 뭐가 일어날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넷 다 인(吝)이에요."

"부끄럽다요."

"네. 저 안에 후련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좋은 게 하나도 없네요."

"없어요."

그가 종이를 접었다.

"대신 저기 어디에도 선생님이 안 아팠다는 말은 없어요. 그건 안 적혀 있습니다."

그가 물병을 도로 가방에 넣었다. 그러고는 내가 따라 놓은 물을 마셨다. 다 마셨다.

"이거 언제 끝나요."

"글쎄요."

"모르시죠."

"모릅니다."

그가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문 앞에서는 돌아서지 않았다.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끝까지 났다.

네 번째 자리가 움직이면 몽괘는 화수미제(火水未濟)가 된다.
아직 건너지 못했다는 괘다.
64괘의 마지막이 그거다.

다 건넜다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 할 말은 아니었다.

창틀 화분에서 마른 잎을 하나 떼어냈다. 떼고 나니 티가 안 났다.

탁자 위에 물병이 남아 있었다. 반쯤 차 있었다.

이 글은 점술 상담이 아니라, 괘를 렌즈 삼아 상황을 다시 보는 연습입니다. 등장인물과 사연은 모두 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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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대운·십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