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다듬은 거예요

📅 2026.10.23 👁 29회 🏷️ #p60퍼스널코드 #퍼스널코드 #화지진 #진괘 #진여최여 #주역소설 #주역공부 #웹소설 #육효 #고민상담 #심리상담 #인생살이 #주역64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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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게시판] 11년 동안 제가 써 온 문서를 신입한테 넘기라는데요
익명 · 40대 ·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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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나가는 글은 11년 동안 제가 썼습니다. 공문, 회신, 사과문, 거래처 메일 다요. 서명은 대표님 이름으로 나갑니다.
9월에 사람이 한 명 들어왔어요. 대표님이 9월 16일에 그 사람이 쓰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뒤로 나간 문서가 열네 건인데, 열네 건 다 제가 고쳐서 보냈어요.
10월 28일까지 보낼 회신이 하나 있습니다. 초안은 그 사람이 썼고, 저는 벌써 열한 군데를 고쳤어요. 큰 일은 아니고요. 한 장짜리예요.
제가 쓰는 게 맞을까요, 그 사람이 쓴 걸로 보내는 게 맞을까요. 고치지 않고 보내 본 적이 11년 동안 한 번도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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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댓글 그거 안 놓으면 평생 님 일이에요

노크가 두 번 났다. 열어 보니 그가 복도에 서 있었다.

"2분 일찍 왔습니다. 여기서 기다릴게요."

"들어오셔도 됩니다."

"아니요. 2분이요."

2분 뒤에 다시 노크 소리가 났다. 들어와서 앉기 전에 서류 집게로 묶은 종이 한 장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마흔셋, 밸브 납품 회사 사무직 11년차라고 했다. 회사에서 나가는 글은 전부 그가 쓴다.

"정확히는 제가 쓰고 대표님이 서명만 하세요."

종이에는 검은 글씨가 아홉 줄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빨간 글씨가 끼어 있었다. 말하는 동안 그는 검지로 줄을 따라 훑었다.

"9월 1일에 사람이 들어왔어요. 스물여섯이고, 전에 있던 데는 6개월 하고 그만뒀대요."

"대표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9월 16일에 한 문장 하셨어요. 앞으로는 그 사람이 쓰게 해요, 하고요. 그러고 더 말씀이 없으셨어요."

대표는 예순하나다. 작년에 아들이 들어와 올해부터 영업을 맡았고, 본인은 사무실에 거의 없다.

같은 방에 김 과장이 있다. 쉰넷이고 작년에 허리를 수술해서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문서 일은 몇 해 전부터 그에게 왔다.

"과장님은 제 글 안 읽으세요. 읽으실 몸이 아니고요."

물을 따라 줬다. 그는 컵을 자기 쪽으로 당겨 놓고 마시지는 않았다.

"물으러 오신 건 뭡니까."

"이번 회신이요. 제가 쓸까요, 그 사람이 쓴 걸로 보낼까요. 10월 28일까지예요." 그가 집게를 풀었다. "큰 일은 아니고요. 한 장짜리예요."

종이를 돌려 놓고 봤다. 검은 글씨가 아홉 줄, 빨간 글씨가 열한 군데였다.

"이 종이는 두 분이 같이 쓰셨습니다. 선생님 질문에는 한 사람만 있어요."

"그건 제가 쓴 게 아니에요. 고친 거죠."

"고친 데가 열한 군데고 그 사람이 쓴 게 아홉 줄입니다. 수로는 선생님 쪽이 많습니다."

그가 종이를 다시 자기 쪽으로 돌렸다.

"고친 게 아니라 다듬은 거예요."

"말을 제가 잘못 골랐습니다. 다듬은 데를 짚어 주시겠습니까."

그가 빨간 글씨를 하나씩 짚었다. 확인했습니다가 확인한 것으로 보입니다로 바뀌어 있었다. 보내겠습니다가 보내도록 하겠습니다로, 저희 잘못입니다가 저희 쪽에 미비한 점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로 바뀌어 있었다.

"날짜하고 수량은요."

"그건 안 건드려요. 사실이니까요."

"열한 군데 중에 사실이 바뀐 데가 있습니까."

"······없어요."

가방에서 포스트잇 한 장이 나왔다. 지난주 수요일에 그 사람이 고쳐진 문서를 받고 붙인 것이라고 했다. 제가 쓴 데가 어디예요, 라고 적혀 있었다.

"답하셨습니까."

"아직 안 했어요."

처음 가져온 질문 — "이번 회신을 제가 쓸까요, 그 사람이 쓴 걸로 보낼까요?"
진짜 질문 — "제가 고치지 않은 문장이 나가도 괜찮을까요?"

통에서 한 개를 빼서 뚜껑 위에 올려 두고 시작했다. 그가 세는 쪽을 보고 있다가 물었다.

"순서가 정해져 있는 거죠."

"정해져 있습니다."

그가 내가 하는 순서를 입으로 따라 외웠다. 다 세고 나서 한 번 더 말해 보라고 했더니 틀리지 않았다.

나온 것은 화지진(火地晉)이었다. 아래 세 칸이 땅이고 위 세 칸이 불이다. 해가 땅 위로 올라오는 그림이다.

"괘사에 주일삼접(晝日三接)이 있습니다. 낮 하루에 세 번 만난다는 말이에요."

"저는 대표님을 하루에 세 번은 못 뵈어요. 11년 동안 문장 얘기는 두 번 했고요."

움직인 칸은 맨 아래였다.

"진여최여(晉如摧如). 진은 나아가는 것이고 최는 꺾이는 겁니다."

"나아가다가 꺾인다는 거예요?"

"아니요. 나아갔다고도, 꺾였다고도 안 적혀 있습니다. 둘 다 여(如)가 붙어 있어요. 여는 '듯'이라는 글자입니다. 나아가는 듯, 꺾이는 듯이에요."

"그럼 뭐가 적힌 거예요."

"모양 둘이요. 일어난 일은 안 적혀 있습니다. 이 괘는 나아가라고도, 그만두라고도 말하지 않아요."

그가 종이를 봤다. 아홉 줄 사이에 빨간 글씨가 열한 군데 있었다.

"선생님이 고치신 열한 군데도 그겁니다. 확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판단됩니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뀐 건 다 끝말이에요. 날짜도 수량도 한 글자 안 바뀌었습니다."

"······열한 군데가 다 끝이네요."

"11년 동안 나간 글도 그렇습니까."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틀리면 저한테 와요. 결국 제가 봐요."

"오늘 들고 오신 건 아직 안 나간 글입니다."

그가 컵을 반 뼘 밀었다.

"그 사람 문장 보면요." 거기서 손이 종이에서 떨어졌다. "······읽으면 회사가 모자라 보여요."

그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정확히는, 아니······." 그가 멈췄다. "······아니요. 그 말이 맞아요."

노트를 펴서 한 줄 적었다. 그는 그걸 보지 않았다.

"이 회신 보내면 책임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건 제가 볼 자리가 아닙니다. 회사에 물으셔야죠."

"알아요. 물어볼 데가 저밖에 없어서요."

"선생님 이름은 어디에 들어갑니까."

"안 들어가요. 서명은 대표님이세요."

"그러면 틀린 글에 선생님 이름이 붙은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11년 동안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문장이 틀리면요." 그가 종이 모서리를 눌렀다. "······제가 안 고친 게 되는 거예요."

한 줄로 말하면 — 나아갔다고도 꺾였다고도 적혀 있지 않다. 둘 다 '듯'으로 적혀 있고, 선생님이 11년 동안 고쳐 온 것도 그 끝말이다.

노트 맨 뒤에 갈아 끼우려고 넣어 둔 속지를 한 장 꺼냈다.

"줄이 없네요."

"줄 있는 건 다 썼습니다."

네 줄을 적었다.

1. 초안을 그대로 보낸다. 끝말을 하나도 고치지 않는다.
— 쉽게 말하면, 단정하는 문장이 11년 만에 처음 나갑니다. 틀리면 안 고친 자리가 남습니다.

2. 고친 열한 군데에 고친 이유를 한 줄씩 적어서 그 사람에게 돌려준다.
— 쉽게 말하면, 열한 군데가 선생님 손에서 그 사람 쪽으로 넘어갑니다. 그쪽이 안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3. 지금까지처럼 고쳐서 보내고, 대표님께 아직 못 넘겼다고 말한다.
— 쉽게 말하면, 문장은 그대로고 못 넘겼다는 말이 처음 나갑니다.

4.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10월 28일에 고친 문서가 나가고, 그 사람은 다시 묻지 않는다.
— 쉽게 말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네 개 다 선생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 사람 문장이 그 뒤에 어떻게 되는지는 이 칸에 없고, 그건 제가 쓸 게 아니고요."

그가 종이를 탁자 선에 맞춰 놓고 2번을 짚었다.

"이거요."

"왜 그걸 고르셨습니까."

"여기만 제가 쓴 게 남아요."

"뭐가 남습니까."

"······이유요. 문장은 그 사람 거고 이유는 제 건데요." 그가 종이를 접었다. "그건 11년 동안 한 번도 안 적었어요."

"대표님이 9월 16일에 그 말씀을 왜 그때 하셨을까요." 그가 나를 봤다. "선생님은 아시겠어요?"

"그건 제가 대답하면 선생님이 들은 말이 아니게 됩니다. 한 문장이라고 하셨어요. 그 문장을 그대로 다시 들려주시겠습니까."

"앞으로는 그 사람이 쓰게 해요."

"거기에 고치지 말라는 말은 없습니다."

"움직인 칸 하나만 바꿔 보면요." 나는 맨 아래 칸을 굵게 고쳐 그렸다. "아래가 땅에서 우레로 바뀝니다. 위는 그대로 불이에요. 이름이 화뢰서합(火雷噬嗑)이 됩니다. 입에 뭔가 끼어 있어서 씹는다는 글자예요."

"씹으라는 거예요?"

"씹으라고 적힌 데는 없습니다. 글자가 그 글자예요. 그리고 이건 이다음 차례가 아닙니다. 같은 여섯 칸을 맨 아래만 바꿔서 한 번 더 불러 본 이름이고요."

일어나면서 그가 창틀 쪽을 봤다. 종이 모서리에 테이프 조각이 들려 있었다. 그가 손끝으로 눌러 평평하게 붙였다. 글씨가 적힌 쪽은 보지 않았다.

"남의 글씨는 안 봅니다."

문 앞에서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저 시계 5분 느려요."

휴대폰을 꺼내 보여줬다. 5분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모른다.

종이는 반으로 접어 초안 집게 사이에 끼워 갔다. 포스트잇도 그 위에 다시 붙였다.

오늘 나온 것은 진이었다. 아래 세 칸이 전부 가는 칸이고 위는 굵은 칸, 가는 칸, 굵은 칸이다. 해가 땅 위로 올라오는 그림이다.

움직인 것은 맨 아래 한 칸이었다. 가운데 네 칸은 손대지 않았다.

그 한 칸이 굵어지면 이름이 서합이 된다. 끝 칸 하나가 바뀌었는데 두 장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진이 먼저고 서합이 다음이라는 뜻은 아니다. 끝 하나를 바꿔 보면 같은 여섯 칸이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 그것만 나란히 적어 둔 것이다.

노트를 펴 보니 오늘 적은 것은 한 줄이었다.

고친 데가 전부 끝말인 것 같다.

'것 같다'에 줄을 그었다. 뒤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그 줄은 끝말이 없는 채로 남았다.


이 글은 점술 상담이 아니라, 괘를 렌즈 삼아 상황을 다시 보는 연습입니다. 등장인물과 사연은 모두 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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