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오늘 칸은 하나예요

📅 2026.10.16 👁 38회 🏷️ #p60퍼스널코드 #퍼스널코드 #지천태 #태괘 #무평불피 #주역소설 #주역공부 #웹소설 #육효 #육효점 #고민상담 #심리상담 #인생살이 #주역64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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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들어오면서 앉지 않고 먼저 물었다.

"제가 좀 길게 말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네."

그래서 11분을 들었다. 한 번도 끊지 않았다.

아버지가 마흔아홉에 쓰러졌고, 3년 누워 있다가 돌아가셨다. 작년 11월에 큰누나가 같은 것으로 입원했다. 마흔일곱이었고 지금은 퇴원해서 복직했다. 그는 올해 마흔하나다.

"그러니까 저는 8년이에요."

말하는 동안 오른손이 탁자 위에 가로로 긴 선을 그었다. 그러고는 그 선을 짧게 끊어 몇 칸으로 나눴다.

올해 3월부터 A4 한 장에 표를 만들었다고 했다. 8년을 분기로 쪼개 서른두 칸이고, 칸마다 할 일이 적혀 있다. 일곱 번 고쳐 적었고 네 번 접어 수첩에 끼워 다닌다.

"보험 세 개 더 들었어요. 다 합쳐서 한 달에 삼십팔만 원이요. 운동은 목요일로 잡았고, 집 명의는 3년차에, 유언장 초안은 5년차에 넣었어요."

"지난달에 종합검진 받으셨다고요."

"네. 다 정상이에요." 그가 접힌 종이를 꺼내 내 쪽으로 밀었다. "이거 숫자 좀 봐 주세요."

나는 종이를 받아 뒤집어 놓았다.

"앞면은 제가 읽을 게 아닙니다."

그는 보온병을 들어 무게를 가늠해 보고 하루에 다 쓰느냐고 물었다. 두 잔이면 끝난다고 했다. 첫 잔을 받자마자 다 마시고 한 잔 더 달라고 했다.

창틀에 올려 둔 종이는 그 자리에 있다. 글씨 쪽이 아래로 뒤집혀 있었다.

누나는 전화하면 나 괜찮다, 너 걱정해, 그 두 마디만 한다고 했다. 아버지 간병 3년 중 2년을 혼자 했는데 그 얘기는 길게 하지 않는다. 회사 양 부장은 쉰넷인데 올해 검진에서 뭐가 나와 재검을 두 번 미뤘다고 했다.

"저는 안 미뤄요."

"그래서 뭘 물으러 오셨습니까."

"지금 다 정리해 두는 게 맞을까 싶어서요. 영업이 13년차인데 밤이 많아요. 좀 줄이고, 집도 작은 데로 옮기고, 애 학자금은 미리 떼 놓고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펜을 놓고 노트를 보고 있었다.

"선생님, 제가 11분 동안 말씀하시는 걸 적었는데요. 적힌 게 날짜 네 개입니다."

"네 개요?"

"아버지 쓰러지신 해, 누나 입원한 작년 11월, 올해 3월, 지난달. 넷 다 지난 날이에요. 앞으로 올 건 하나도 안 적었습니다."

"왜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게 날짜가 아니고 칸이라서요."

그가 수첩을 열었다. 표를 펴는데 접힌 자리가 버텨 주지 않고 찢어졌다. 올해 네 칸이 한 장, 나머지 스물여덟 칸이 한 장이 됐다.

"서른두 칸 중에 오늘 하실 수 있는 게 몇 개입니까."

그가 한참 봤다. 올해 1분기 칸에는 보험, 2분기에는 검진, 3분기에는 명의 상담 예약이 적혀 있고 셋 다 줄이 그어져 있었다.

"······하나요. 4분기요."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유전 상담 예약이요. 그거 전화 한 통이에요."

"그 칸은 언제부터 적혀 있었습니까."

"3월이요."

3월부터 7개월이다. 그 숫자는 적어만 뒀다.

"그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라는 거예요?" 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다. "저 지금 할 수 있는 거 다 하고 있는데요."

"안 하고 계신 게 하나 있어서 그걸 말씀드린 겁니다. 3월부터 비어 있는 칸이요."

손이 다시 선을 그으려다 한 점에서 멈췄다.

"그럼 제가 오늘 뭘 해요."

산가지를 세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세고 나누고 덜어내는 것을 여섯 번 해야 한다. 그는 그 사이에 찢어진 종이를 무릎에 펴 놓고 뭔가를 적었다.

"뭐 적으셨습니까."

"두 칸 늘렸어요. 생각난 거요."

지천태(地天泰)가 나왔다. 아래 세 칸이 다 굵고 위 세 칸이 다 가늘다. 움직인 자리는 아래에서 세 번째였다.

괘 위에는 소왕대래(小往大來)라고 적혀 있다.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온다는 말이다.

"큰 게 온다는 거예요?"

"오는 쪽이 크다고 돼 있습니다. 그게 뭔지는 그 줄에 없어요. 이건 자리 얘기입니다. 아래 있던 게 올라오고 위에 있던 게 내려오는 거요."

"태평하다는 그 태 아니에요? 그럼 좋은 거네요."

"이 괘는 좋은 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늘은 올라가는 거고 땅은 내려오는 거예요. 그런데 이 그림은 하늘이 아래에 있고 땅이 위에 있습니다. 둘이 서로 지나가는 중인 걸 그려 놓은 거예요. 멈춰 있는 그림이 아닙니다."

움직인 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무평불피 무왕불복(无平不陂 无往不復).

"피(陂)는 비탈이라는 글자입니다. 무너진다는 말이 아니고 기울어진 땅이에요."

"평평한 게 다 기운다는 거죠."

"아닙니다. 안 기우는 평평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아니라는 글자가 두 번 들어 있어요." 나는 노트에 그 두 글자를 따로 적어 보였다. "이 칸은 뭐가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안 되는 게 없다고만 말해요."

그가 입을 다물었다.

"선생님 표도 그 모양입니다. 서른두 칸에 안 일어나는 게 없다고 적혀 있어요. 뭐가 일어난다고 적힌 칸은 없고요."

"······그건 모르니까 그렇죠."

"네. 적힌 쪽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가 손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제가 아버지처럼 될까요."

"그건 제가 대답할 자리가 아닙니다." 나는 그가 가져온 종이를 가리켰다. "선생님이 적어 오신 서른두 칸에도 그건 안 적혀 있어요. 거기 적힌 건 다 선생님이 하실 일입니다."

그때 문자가 왔다. 아내가 수업 끝나고 바로 간다고 했다. 아내는 서른아홉이고 작년부터 야간 대학원을 다닌다.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집에 없다.

"아, 오늘 목요일이네요." 그가 종이를 봤다. "운동 칸이 목요일인데요. 3월부터 한 번도 안 갔어요. 애가 목요일에 학원 끝나서요."

아홉 살이라고 했다. 그가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 아래쪽에 연필로 뭔가 그려져 있었다. 집 같은 것이고 창이 네 개였다.

"어, 얘가 여기다 그렸네."

나는 탁자 밑에서 접어 둔 종이를 꺼냈다. 전에 기운 다리 밑에 끼우려고 접어 두고 끼우지 않은 채 그냥 둔 것이다. 접힌 자리를 펴서 네 줄을 적었다.

  • 전화를 걸어 날짜를 잡는다. 표는 그대로 둔다.
  • — 쉽게 말하면, 적어 둔 것 하나가 날짜가 됩니다.

  • 표를 접어 두고 그 칸만 수첩 맨 앞으로 옮긴다.
  • — 쉽게 말하면, 서른두 칸 중에 하나만 눈에 보이는 자리에 둡니다.

  • 그 칸을 그대로 둔다. 올해가 지나가고 칸은 비어 있다.
  • — 쉽게 말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 아내에게 표를 보여준다.
  • — 쉽게 말하면, 서른두 칸을 선생님 말고 한 사람이 더 알게 됩니다.

    "네 개 다 선생님이 하시는 일이고, 그 뒤에 몸이 어떻게 되는지는 이 칸에 없습니다. 그건 제가 쓸 게 아니고요."

    그가 4번에 손가락을 댔다.

    "이거요."

    "왜 그걸 고르셨습니까."

    "보여주면 제가 못 고치잖아요."

    "고치는 게 왜 안 됩니까."

    "일곱 번 고쳤어요. 고칠 때마다 칸이 늘었고요."

    "늘면요."

    "······늘면." 그가 종이를 접었다. "8년이 더 길어 보여요."

    "그 전화를 7개월 안 하신 것도요."

    "거기서 뭐라고 하면 적어 놓은 게 다 틀리잖아요."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틀리면 8년이 아닐 수도 있는 거고요."

    "선생님이 오늘 고르신 건 칸을 채우는 게 아니고 고치는 걸 그만두는 겁니다."

    그가 3월에 아내가 그거 뭐냐고 한 번 물었다고 했다. 별거 아니라고 대답했고, 그 뒤로 아내는 묻지 않는다.

    "오늘 움직인 칸 하나만 바꿔 보면요." 나는 아래에서 세 번째 칸을 가늘게 고쳐 그렸다. "붙어 있던 바닥이 두 칸하고 한 칸으로 갈립니다. 그림 이름이 지택림(地澤臨)이 돼요. 내려다본다는 글자입니다."

    "내려다본다고요."

    "네. 이건 8년 뒤 그림이 아닙니다. 오늘 그림에서 한 칸만 가늘게 해 본 거예요."

    그는 그 말을 더 묻지 않았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이 그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태가 오늘이고 림이 나중인 것은 아니다. 바닥이 한 장처럼 붙은 채로 본 장과, 바닥이 한 번 갈린 채로 본 장이다. 같은 여섯 칸을 두 번 그린 것이고, 사이에 든 시간은 없다.

    그는 찢어진 두 장을 수첩에 끼웠다. 올해 장이 위로 오게 끼웠다. 두 번째 잔은 그대로 있었다.

    문 앞에서 한 번 돌아섰다.

    "그 전화요. 지금은 늦었고, 내일 아침에는 열려 있겠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나가면서 탁자 위에 손바닥을 한 번 올려 아까 선을 그은 자리를 쓸었다.

    문이 닫히고 나서 노트에서 한 장을 찢어 네 번 접었다. 탁자 밑으로 손을 넣어 기운 쪽 다리 아래에 끼웠다.

    이번에는 흔들어 보지 않았다.


    이 글은 점술 상담이 아니라, 괘를 렌즈 삼아 상황을 다시 보는 연습입니다. 등장인물과 사연은 모두 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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