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제 돈인지 빌라 돈인지

📅 2026.10.13 👁 13회 🏷️ #p60퍼스널코드 #퍼스널코드 #천택이 #이괘 #시리고상 #주역소설 #주역공부 #웹소설 #육효 #육효점 #고민상담 #심리상담 #인생살이 #주역64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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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게시판] 빌라 일, 이제 그만하겠다고 말해도 될까요 익명 · 50대 · 남

철물점 22년 했고, 일곱 집 사는 빌라에 11년째 살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 빌라에 고장 나는 건 제가 고쳤습니다. 계단 센서등 열한 개, 옥상 방수, 물탱크, 계단 난간, 우편함 자물쇠. 지난주에는 공동 현관 번호키도 바꿨습니다. 숫자 두 개가 닳아서 비밀번호가 다 보이더라고요. 십일만 원 들었고, 새 번호는 쪽지로 돌렸습니다.

돈 받을 생각은 없어요. 다들 고맙다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제 좀 그만하고 싶습니다. 말로 할지, 3년치 영수증을 정리해서 집집마다 돌릴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 덜 서운하게 들릴까요.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이미 말을 하고 있었다.

"다 해 놨어요."

"들어오세요."

"번호키요. 지난주에 바꿨습니다. 쪽지도 돌렸고요."

앉으라고 했는데도 서서 두 마디를 더 했다. 그러더니 내 책상의 보온병을 들어 올려, 밑에 컵받침을 받쳐 놓았다.

"이거 받침 없으면 나무에 자국 남아요."

쉰여덟이고, 철물점을 22년 했다고 했다. 의자에 앉고 나서도 구두 앞코로 바닥을 톡톡 짚었다. 그 발은 쉬지 않았다.

그가 탁자에 누런 봉투를 올렸다. 3년치 영수증이었다. 고무줄로 묶은 가게 전표 묶음도 같이 나왔다. 봉투 입구에는 접힌 쪽지 한 장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새 번호가 적힌 쪽지였다.

"그만하겠다고 말을 할까요, 이걸 적어서 돌릴까요. 그거 물으러 왔어요."

나는 그가 하는 말을 노트에 받아 적었다. 그가 고개를 빼고 들여다봤다.

"뭐 적으세요?"

"선생님이 고친 것들요."

"좀 읽어 주세요."

"센서등 열한 개. 옥상 방수. 물탱크. 번호키. 계단 난간. 우편함 자물쇠."

"맞아요. 그 정도예요."

"여섯 가지 중에 해 달라는 말이 먼저 나온 건 한 번입니다. 작년 여름, 302호요."

"그 집은 교대 근무라 낮에 자요. 옥상 좀 봐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보셨습니까."

"······그 전 주에 벌써 해 놨었어요."

나는 거기서 짐작을 하나 했다.

"고맙다는 소리를 못 들으셔서 그만두시려는 거군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요." 그가 손을 저었다. "고맙단 말은 들어요. 101호는 귤도 한 봉지 갖다줬어요."

틀린 짐작이었다. 노트에 적은 한 줄을 지웠다.

"그럼 하나만 묻겠습니다. 3년 동안, 하겠다고 말씀하신 적은 있습니까."

발이 멈췄다. 잠깐이었다.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제가 했어요."

"시작한다는 말을 안 하셨으면, 그만둔다는 말은 어디다 하는 겁니까."

그는 봉투를 한 번 쥐었다가 놓았다.

"번호키 십일만 원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제 통장이요."

"센서등 같은 물건은요."

"가게 창고에서요. 장부에는 '폐기'라고 적혀 있어요. 장부는 집사람이 적는데, 제가 그렇게 말했어요. 현장에서 깨졌다고."

그가 창 쪽을 봤다.

"그게 제 돈인지 빌라 돈인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때 그의 전화가 울렸다. 아내였다. 창고에 센서등이 몇 개 남았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는 생각도 안 하고 대답했다.

"스물세 개."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물었다.

"장부에는 몇 개로 돼 있습니까."

"······서른네 개요."

봉투를 다시 집다가 전표 한 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자기 가게 전표였는데, 받는 사람 칸에 자기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재작년 10월, 사만 이천 원.

"이건 왜 끊으셨습니까."

"한 번 그렇게 해 봤어요. 그 뒤로는 안 했고요. 끊어 놔도 달라지는 게 없어서요."

처음 가져온 질문 — "그만하겠다고 말할까요, 3년치를 적어서 돌릴까요?" 진짜 질문 — "시작한다고 말한 적도 없는 일을, 어떻게 끝낸다고 말하지?"

산가지를 쏟아 세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는 의자를 세 번 고쳐 앉았다. 네 번째로 들썩였을 때는 탁자 밑으로 손을 넣었다.

"이거 다리 밑에 고임이 하나 빠졌어요."

"압니다."

괘가 나왔다.

"이런 장면이 적혀 있어요. 호랑이 꼬리를 밟았는데, 호랑이가 안 문다."

"호랑이요?"

"원문은 이호미 부질인(履虎尾 不咥人)입니다. 이(履)는 밟는다는 글자예요. 이 괘의 이름이기도 하고요."

괘는 여섯 줄 중 아래에서 세 번째만 끊어져 있고, 나머지 다섯은 이어진 줄이다.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못이다.

"조심하라는 거네요."

"조심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안 물렸다고 적혀 있어요. 안 밟았다고는 안 적혀 있고요."

그가 입을 다물었다.

"오늘 움직인 자리는 맨 위, 여섯 번째 칸입니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이 서 있는 자리예요."

"뭐라고 적혀 있는데요."

"시리고상 기선원길(視履考祥 其旋元吉). 밟아 온 자리를 보고, 거기 남은 흔적을 따져 본다. 돌아서면 크게 좋다."

"좋다는 거네요."

"좋다는 말은 '돌아서면' 뒤에 붙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돌아보는 데까지 와 계시고요. 흔적이라고 옮긴 상(祥)은 좋은 조짐도 되고, 그냥 조짐도 되는 글자예요. 뭐가 보일지는 안 적혀 있습니다."

"그럼 저는 뭘 밟은 거예요. 그 호랑이요."

"그건 제가 정해 드릴 게 아닙니다. 다만 밟아 온 자리는 오늘 다 들고 오셨어요."

나는 봉투와 전표 묶음을 가리켰다. 그는 전표 묶음을 한참 내려다봤다.

"······스물세 개랑 서른네 개."

그가 혼잣말처럼 셌다. 손가락이 하나씩 접히다가 열한 개에서 멈췄다. 계단에 달아 준 센서등 수와 같았다.

"집사람은 그 뒤로 안 물었어요. 한 번 물었는데, 제가 깨졌다고 해서요."

"안 물렸다고 적혀 있다는 말, 아까 했습니다."

그가 짧게 웃었다. 웃음은 금방 꺼졌다.

"101호는 작년에 수술해서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요. 등이 늦게 켜지면 어두운 데 그냥 서 있어요. 그래서 바꿨어요." 그가 잠깐 멈췄다. "근데 그 집이 공동 전기 요금 올리자는 건 반대했어요."

"그 집은 그 집 사정이 있겠죠."

"302호는요. 왜 저한테 아무 말도 안 할까요."

"그건 제 자리에서 안 보입니다. 제게 보이는 건, 일곱 집인데 쪽지가 한 장 남아 있다는 것까지예요."

그가 봉투 입구의 쪽지를 봤다.

"······두 번 올라갔어요. 두 번 다 안 붙이고 내려왔어요."

"왜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줄로 말하면 — 안 물렸다고 해서 안 밟은 건 아니다. 3년 동안 밟아 온 자리를, 그는 오늘 처음 돌아보고 있다.

"종이를 하나 쓰겠습니다."

산가지를 싸 두는 종이를 펴서, 안쪽 빈 면에 네 줄을 적었다.

하나. 3년치를 적어서 일곱 집에 돌린다. 돈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둘.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다음에 고장 나는 것도 고친다.

셋. 다음에 고장 나는 건 그냥 둔다. 누가 말하면 그때 간다.

넷. 장부에 '폐기'라고 적은 줄을 고쳐 적는다. 빌라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넷 다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일이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이 칸에 안 적혀 있습니다."

그는 종이를 오래 봤다. 손가락이 세 번째 줄에서 멈췄다.

"셋이요."

"왜요."

"안 고치고 두면요. 누가 저한테 말을 하잖아요."

"3년 동안 그런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한 번 있었는데, 그때 제가 벌써 해 놨고요."

그가 전표 묶음을 끌어당겼다.

"······저, 그 말이 듣고 싶었나 봐요. 해 달라는 말이요."

그 말을 하고 그의 발끝이 멈췄다.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이 칸이 바뀌면 어떻게 돼요."

"이름이 태(兌)가 됩니다. 기쁘다는 글자인데, 말한다는 뜻으로도 써요."

"······말한다는 뜻이요."

그가 한 번 따라 했다.

오늘 나온 그림은 이(履)였다. 하늘 밑에 못이 있고, 여섯 줄 중 아래에서 세 번째만 끊어져 있다. 움직인 자리는 맨 위, 여섯 번째 칸이었다. 그 한 줄이 끊어지면 위쪽 하늘이 못으로 바뀌어, 위도 못이고 아래도 못인 그림이 된다. 앞 그림이 오늘이고 뒤 그림이 나중이라는 뜻은 아니다. 같은 일을 다른 자리에서 그린 두 장이다.

그가 종이를 접어 전표 묶음 사이에 끼웠다. 일어서다 말고 탁자 밑으로 손을 넣어, 고임이 빠진 자리를 만져 봤다. 그러고는 손을 뺐다.

"이건, 다음에 누가 말하면요."

문이 닫히고 나서 탁자를 한 번 흔들어 봤다. 한쪽으로 기울었다. 보온병 밑에는 그가 받쳐 놓은 컵받침이 그대로 있었다.

고임은 끼우지 않았다.

이 글은 점술 상담이 아니라, 괘를 렌즈 삼아 상황을 다시 보는 연습입니다. 등장인물과 사연은 모두 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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