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에 셔츠를 찾으러 내려갔다 올라오는데 문 앞에 사람이 서 있었다.
"5분이요." 그가 먼저 말했다. "안에 안 계셔서요."
마흔둘, 개발자다. 1년 4개월 전에 한 번 앉았던 사람인데 오늘도 같은 봉투를 무릎에 올려놓고 내려놓지 않았다. 모서리가 그때보다 더 닳아 있었다.
"그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습니까."
"조용히 덮였어요. 아무도 사과 안 했고 저는 남았고요."
다음 프로젝트 명단에 그의 이름이 없었다. 그 말을 하고 바로 고쳤다.
"빠진 건 아니고요. 제가 안 들어간 거예요. 그때 좀 쉬고 싶었고."
조 팀장 얘기가 나왔다. 그때 위에 있던 사람인데 작년에 다른 본부로 갔다가 올해 3월에 돌아왔고, 돌아와서 그에게 한 말은 없었다.
9월에 새 프로젝트가 떴다. 정산 모듈을 다시 짜는 일인데 위에서 내려온 기간이 4개월이다.
"아홉 달은 봐야 되는 일이에요. 사람도 둘 줄었고요."
"이번에도 메일을 쓰셨습니까."
"다섯 통이요. 9월 12일부터 11월 3일까지요."
창틀 화분에 꽃대가 하나 올라와 있고 끝은 아직 안 벌어졌다.
"이걸 어떻게 써야 제가 아니라는 게 증명되는지, 그걸 여쭤보려고 왔어요."
저번에 똑같은 말을 들었고 나는 증명하면 뭐가 달라지느냐고 되물었다. 입을 떼기 전에 그가 손을 들었다.
"그건 저번에 물어보셨어요. 저는 답을 못 했고요."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걸 묻겠습니다. 저번에 가져오신 건 보내신 메일이었어요. 이번 다섯 통은 어디 있습니까."
그가 휴대폰을 꺼내 한참 들여다봤다.
"······임시보관함에요."
"다섯 통 다요."
"네."
"저번에는 보낸 것을 정리해 오셨고 오늘은 안 보낸 것을 들고 오셨습니다. 저번에는 그 봉투를 탁자에 올려놓으셨고, 오늘은 안 내려놓으셨어요."
"안 읽으실 거죠."
"안 읽습니다. 안에 뭐가 들었습니까."
"백 장 그대로예요. 1년 4개월 동안 한 번도 안 열었어요."
그러고 봉투를 열었다. 방금 자기 말을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맨 위에 저번에 내가 네 줄을 적어 준 종이가 있었다. 펴는 손이 중간에 멈췄다.
네 줄 밑에 날짜가 네 개 적혀 있었다.
"······이거 제 글씨네요."
"네 번 보신 겁니까."
"안 봤다고 생각했어요."
날짜는 읽어 주지 않았다. 그가 하나씩 보다가 세 번째에서 한참 멈췄다.
"넷 중에 어디에 적으셨습니까."
"네 번째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거요."
"그게 1년 4개월 동안 일어났습니까."
"네." 그러고 또 고쳤다. "아니, 셋도 한 번 됐었어요. 조 팀장 나갔을 때요. 3월에 다시 왔고요."
"그럼 그 종이가 맞은 겁니까."
"맞았잖아요."
"아닙니다. 넷 다 1년 4개월 전에 그 괘에서 나온 모양으로 적혀 있었어요. 그중 하나에 날짜를 네 번 적으신 건 선생님입니다."
"그럼 저번하고 똑같잖아요."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러면 그게 회사가 아니고 저라는 얘기 아니에요?"
대답하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세탁기가 돌기 시작했다.
산가지를 세는 동안 그는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22분쯤 걸렸다.
"그 사이에 다섯 통 지웠다가 복구했어요."
화수미제(火水未濟)가 나왔다. 맨 아래 칸이 움직였다.
"미제라는 괘입니다. 아직 못 건넜다는 뜻이에요. 예순네 번째고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이 아직 못 건넜다고요?"
"네. 그렇게 끝납니다."
괘사에는 이런 말이 붙어 있다. 소호흘제(小狐汔濟), 유기미(濡其尾), 무유리(无攸利).
어린 여우가 거의 다 건넜는데 꼬리를 적셨다. 꼬리는 제일 나중에 물에 닿는 데다.
"거의 다 건넜다는 건 좀 낫네요."
"흘(汔)이 거의라는 글자입니다. 거의까지는 적혀 있어요. 안 움직였다고는 안 적혀 있습니다."
움직인 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유기미(濡其尾), 인(吝). 꼬리를 적셨다, 부끄럽다.
그가 같은 말이 또 나왔다고 했다.
"네. 두 군데 있습니다. 괘 위에 붙은 건 이로울 게 없다는 말이고, 칸에 붙은 건 부끄럽다는 말이에요."
"그게 그거 아니에요?"
"다릅니다. 하나는 일이 안 된다는 얘기고 하나는 기분 얘기입니다. 꼬리를 적신 건 한 번인데 붙은 말이 두 개예요."
그가 다섯 통을 위에서 아래로 넘기다가 멈췄다.
"······이거 받는 사람이 없는데요."
네 통에는 받는 사람이 적혀 있고 11월 3일에 쓴 다섯 번째만 비어 있었다.
"유 씨는 봤습니까."
"세 번째 거까지요." 저번에 신입이었고 지금 같은 파트다. 7월에 결혼했고 휴직 얘기가 돈다고 했다. "선배 이름만 들어가는 건 좀 아니라고 한 번 하고, 그 뒤로는 안 물어봐요."
"조 팀장님한테 쓴 건요."
"네 번째랑 다섯 번째예요. 안 보낸 거요."
"이번에도 저번하고 똑같이 될까요."
"그건 제가 못 봅니다. 제가 본 건 오늘 가져오신 게 보낸 메일이 아니라 안 보낸 메일이라는 것까지예요."
"저번에 삼 년이라고 하셨잖아요. 1년 4개월밖에 안 됐는데요."
"36개월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계절로는 안 된다는 쪽이라고요."
"그럼 1년 4개월은 몇 계절이에요."
세어 봤다. "다섯이요."
그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고 접었다.
봉투 겉면이 비어 있어서 거기 적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여기다요?"
"안쪽은 백 장이 들어 있어서요."
넷까지는 늘 적는 수대로 적고, 다섯 번째는 내가 먼저 적었다.
하나. 다섯 통을 그대로 보낸다. 일단 해보자는 답이 온다. — 보낸 기록은 남고, 그다음은 저번과 같은 모양입니다.
둘. 한 통으로 줄여서 보낸다. 날짜와 숫자만 남는다. — 짧아진 만큼 누가 썼는지도 흐려집니다.
셋. 안 보낸다. 임시보관함에 다섯 통이 그대로 남는다. —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쪽입니다. 거기 있는 걸 선생님만 압니다.
넷. 다섯 번째 통의 받는 사람 칸에 선생님 주소를 넣는다. — 보내긴 보내는데 읽는 사람이 한 명입니다.
다섯. 선생님은 한 통도 안 보냈는데 회의에서 다른 사람이 기간 얘기를 꺼낸다. — 선생님이 하는 게 아닌 쪽입니다. 적을 수는 있는데 제가 일어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다섯 번째 줄을 짚었다.
"이건 왜 적으셨어요."
"전에 여기서 하나가 빠졌다는 말을 두 번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 줄 밑에 아무것도 못 적었어요."
한참 보다가 첫 줄을 짚었다.
"왜요."
"저번에 세 번 썼는데 일단 해보자고 왔어요." 그가 봉투 모서리를 접었다. "이번엔 다섯 통이니까요."
"다섯 통이면 다를까요."
"아니요." 조금 있다가 말했다. "똑같을 거예요."
"그럼 왜 보내십니까."
"······그래야 저번에 그 사람들이 똑같았다는 게 확인되잖아요."
그는 그 말을 하고 봉투 모서리를 놓았다.
"저번에는 자기가 이상한 건가 싶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대답을 저쪽에서 받아 오려고 하시는 거네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면서 그가 책장을 봤다.
"선생님은 자기 괘도 뽑아요?"
책 사이에서 종이를 꺼내 뒤집어서 줬다. 앞면을 보여준 건 처음이다.
수풍정(水風井), 그 아래에 개읍불개정(改邑不改井). 마을은 옮겨도 우물은 옮기지 못한다.
"이거 좋은 거 아니에요?"
"저는 그 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물이 안 옮겨지는 건 알겠는데, 제가 우물인지 두레박인지는 거기 안 적혀 있어서요."
종이를 기울였다. 귀퉁이에 초록 볼펜으로 세 글자가 있다.
"두레박."
"다른 분이 적으신 겁니다."
"선생님 괘를 남이 읽었네요."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적은 겁니다. 그때는 저 의자에 앉았어요."
"그럼 여기는 누가 앉았어요."
"저보다 열 살쯤 위였습니다. 지금은 안 계십니다."
그가 종이를 돌려주고 봉투를 들었다.
"저번에 안 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1년 4개월 전에 움직인 칸은 네 번째였고, 그 칸이 바뀌면 그날 그림은 구덩이가 하나 더 생기는 괘가 된다. 거기에 유심형(維心亨)이 붙어 있다. 마음만은 통한다.
"그 말은 선생님이 한 번 더 오셔야 할 수 있었어요."
문손잡이를 잡은 채 서 있었다.
"통하면 뭐가 달라져요."
대답이 안 나왔다. 그가 조금 기다렸다.
"······그래도 적어는 놓으셨네요."
문이 닫히고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세탁기는 아직 돌고 있었다.
오늘 나온 미제는 가는 칸과 굵은 칸이 하나씩 번갈아 든 그림이다. 움직인 건 맨 아래 한 칸이다. 그 칸이 굵어지면 아래가 물에서 연못으로 바뀌고 위는 그대로 불이다. 불 아래에 연못이 든 모양, 그게 규(睽)다. 등지고 본다는 글자다.
미제가 오늘이고 규가 나중인 것이 아니라, 번갈아 들던 자리가 맨 밑에서 한 번 끊긴 그림과 안 끊긴 그림이다.
종이는 책 사이에 도로 꽂지 않았다. 초록 글씨가 위로 오게 창틀에 올려놨다.
세 글자고, 묻는 말이 아니라 답처럼 적혀 있다. 나는 아직 그게 맞는지 모른다.
이 글은 점술 상담이 아니라, 괘를 렌즈 삼아 상황을 다시 보는 연습입니다. 등장인물과 사연은 모두 가상입니다.